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월트 디즈니의 상상을 날개, 디즈니랜드의 탄생

마인드튼튼 2011. 11. 16. 16:5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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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국의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캘리포니아 LA로 가는 행 기차 안에 한 젊은이가 부푼 꿈을 안은 것처럼 웃음을 머금고 자리에 앉아서 창 밖을 보고 있었다. 그는 주머니에 단 돈 40달러 밖에 없었지만 자신의 꿈을 실현 시킬 수 있다는 희망에 마냥 기쁠 따름이었다. 허름하고 남루한 옷 차림의 젊은 남자가 바로 21세기의 감성 시장을 선도하고 어린이들의 우상 된 월트 디즈니다. 지금 전세계의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 꿈과 동화의 나라를 선사하고 있는 디즈니랜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 1955년 7월 17일 개장 이래 전세계 약 5억 1천 5백만 명이 찾았을 정도로 매우 유명한 테마파크로 성장했다. 현재 월트 디즈니랜드는 일본, 프랑스, 홍콩에도 진출하였고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고 그 성장은 끝이 없어 보인다.

이러한 성공 뒤에 숨은 월트 디즈니의 노력은 무엇이었을까? 월트 디즈니가 할리우드에 나타나서 자신이 만든 생쥐(현재의 미키마우스) 장난감을 갖고 영화사를 찾아 다니며 이 생쥐로 어린이들에게 꿈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했을 때 수 많은 영화사들이 거절하였다. 그 때 월트 디즈니는 낙담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잃지 않고 꼭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가능성 사고에만 집중하였다. 그 때 그는 자신의 부인에게 이렇게 다짐했다고 한다. “릴리언, 만약 내가 미키를 가지고 영화 제작을 제안하고 10번 다 거절 당해도 나는 꼭 영화를 제작할거야.”그는 수 많은 거절 속에서도 자신은 어린이들에게 무한한 꿈과 희망이 될 수 있는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. 그렇게 많은 시련의 시간이 흐른 뒤 마침내 자신이 만든 생쥐 캐릭터를 미키마우스라 부르고 무성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. 그 영화는 대성공을 거두었고, 월트 디즈니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. 그는 그것에 멈추지 않고 1932년 꽃과 나무들을 시작으로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, 피노키오, 환타지아, 덤보, 밤비 등 수많은 히트작을 제작하였다. 처음에는 그토록 영화제작자들의 거절을 당했던 미키마우스 캐릭터는 현재 한 해 수익만 65억 달러에 이른다. 그는 그것에 멈추지 않고 또 다른 큰 꿈을 꾸게 된다. 현재 애너하임에 있는 디즈니랜드 보다 100배가 큰 규모의 디즈니 월드 건설을 꿈꾼다. 당시 플로리다의 올랜드는 늪지대로 유명했다. 늪지대에 놀이공원이라니 말도 안 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모든 사람들은 반대했다. 하지만 월트 디즈니는 진정으로 상상과 이야기, 그리고 꿈을 매개로 한 드림소사이어티를 계획하고 그 신념을 밀고 나갔다. 수 많은 주변 사람들의 반대에도 그는 가능하다고 믿었고 자신의 가능성 사고를 지켜나갔다. 그 결과 월트 디즈니는 진정으로 어린이들과 어른이 함께 꿈과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드림소사이어티를 만들 수 있었다. 그의 가능성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꿈을 선물하였다.

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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